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해/역사귀속과 계승인식 (문단 편집) ==== 한국 ==== 한국계 국가 모두는 역사 교과서에 발해를 자국사의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대사로, 북한의 경우에는 중세사로 다룬다.[* 고조선-남북국을 고대, 고려 왕조를 중세, 조선 왕조를 중세/근세/근대로 보는 한국과는 달리, [[신라 촌락 문서]]의 내용을 근거로 남북국시대부터를 '중세봉건사회'로 보기 때문이다.] 발해나 고려 모두 고구려의 후신국임을 천명했기 때문인지 가끔씩 누가 진짜 후신국인지를 가지고 키배를 벌이는데, 둘 모두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촉한정통론|중국의 전한-후한-촉한과 같은 관계]]를 비유로 설명한다. 그중 발해는 후한의 경우에 해당되는데 일단 후한의 전신인 [[전한]]이 중원을 200년 이상 통치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듯이, 발해의 조상국인 [[고구려]] 역시 한반도 북부 요동 요서 지방을 700년 이상 다스려 존재감이 묵직하던 나라였고 게다가 [[후한]]은 전한이 멸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광무제]]라는 걸출한 위인이 나타나 각지의 군벌을 격파하고 후한을 건국했듯 [[발해]] 역시 [[대조영]]이라는 걸출한 리더가 나타나 유민들을 통합하고 천문령 전투에서 당나라군을 격파하고 발해를 건국한 점도 비슷하다. 게다가 멸망 이후도 유사한데, 후한이 멸망한 이후에는 후한을 멸망시킨 [[위(삼국시대)|위나라]]가 세워지고 그리고 또 한쪽에서는 후한의 시조인 광무제와 같은 한나라 황족인 [[유비]]가 위나라의 탄압을 피해 도망친 후한의 이주민들을 바탕으로 후한의 형제국인 [[촉한]]을 건국했다. 위나라는 중원을, 촉한은 익주지방을 점거하며 두 나라는 서로를 원수취급했고 조상의 땅을 수복하려는 촉한과 이를 저지하던 위나라는 [[삼국시대(중국)|40년동안 서로 피튀기는 전쟁]]을 계속했다. 발해 역시 멸망한 후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이 [[요나라]]를 건국했고 그리고 한쪽에서는 발해의 시조 대조영과 같은 고구려 유민의 후손이자 고구려계 호족인 [[왕건]]이 [[고려]]를 건국했다. 요나라는 발해의 영토인 요동과 요서 그리고 연해주 지방을, 고려는 발해의 남방 영토인 평안도 일대를 비롯한 압록강 이남 일대의 영토를 차지하며[* 다만 발해의 남방 영역에 대해서는 지금도 확정적이라기엔 이설이 많은 편이다. 예를 들어 어떤 학자는 평양 일대까지 발해가 통치했다고 보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고고학적 근거를 토대로 발해가 직접 지배는 못하고 신라와의 완충 지대 비슷하게 남겨뒀을거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발해와 신라 사이에 있던 [[흑수국]], [[보로국]] 같은 나라가 바로 그 존재라는 것이다.] 두 나라 역시 서로를 원수 취급했고 끝내는 [[여요전쟁|27년이 넘는 전쟁]]을 치르고 말았다. 형제국들의 운명도 비슷한데 촉한, 고려 모두 전한/후한, 고구려/발해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는 국력의 한계로 실패한 점 역시 비슷하다. 다만 고려는 [[동북9성]]과 [[제1차 요동정벌]]을 통해 아주 일시적으로 대업을 완수한 적은 있다. 단, 후한-촉한의 관계를 발해-고려의 관계에 완전히 대입할수는 없다. 촉한은 후한의 내부에서 건국된 나라이고 촉한의 시조 유비 역시 후한인이었으며 위나라가 찬탈한 한실의 계통을 부흥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건국되었다. 그러나 고려는 발해와 관련이 없는 신라 땅에서 고구려계 호족들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지 발해를 계승한 나라가 아니다. 즉 고구려-발해/고구려-고려이지 전한-후한-촉한처럼 고구려-발해-고려가 아니다. 고려는 한반도의 통일국가로 500년 가까이 존속했지만 촉한은 중국의 일개 지방국가로 50년도 채 가지 못했다는 점도 매우 큰 차이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